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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3일 화요일

단상.

SM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항상 계속 쭉 해왔던것이다.

그러나 SM이라는 性성향(?) 아니면 개인의 性추구(?) LGBT처럼 성적소수자(?) 다양한 생각들이 들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나의 가진 새디즘은 나의 개인적 성적성향이자 취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새디즘은 정신적/육체적인 행위를 상대방에게 가하여 그 상대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며 또는 느끼며 성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그로 인해 성적 흥분도 갖게 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며 사실 이는 우리 사회가 말하는 보편적성가치관이나 성윤리에 위배되는것은 당연하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적 성격으로 볼수도 없는것이 나는 나의 새디즘을 받아낼수 있는 메저키즘을 가진 파트너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얻게 되는것이지 그것을 일반적인 성적가치관을 가진 상대에게 하지는 않는다는것이다.

SM에는 롤플레잉이라는 플레이가 있다. 사실 성향과 포지션은 분리되어 있다.
보통 에셈을 하는 사람들에게 성향이 어떻게 되세요? 라고 물으면 전 멜돔이예요 전 팸섭이예요 라고 하는데... 내가 가진 상식에선 그건 틀린답이다.

즉 성향을 물어볼땐 새디스트인지 메저키스트인지를 답하면 되고...
포지션이 어떻게 되세요 할땐.... 돔인지 섭인지, 마스터인지, 슬레이브인지를 답하면 된다.

그리고 또하나 돔이던 섭이던... 커던 키던... 다들 자기에겐 새디즘도 메조키즘이 없다고 답하는데.. 그것도 틀렸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아.

보통의 사람들에겐 새디즘과 메저키즘 둘다 갖고 있으며 두개의 성향의 발현 차이에 의해서 새디즘이 강할수도 메저키즘이 강할수도 있는것이다. 둘다 없다고 답하는 사람은 정확하게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것인데 얘기하다 보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다고 단언해버린다.

스팽키는 대부분 메저키즘을 갖고 있기에 스팽을 받기를 원한다.
스팽커는 대부분 새디즘을 갖고 있어서 상대에게 스팽을 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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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범주에서 살짝 벗어난 얘기를 하자면,
DS라는 복잡미묘한 관계설정이 싫어서 플레이위주의 만남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것이다. 그 순간만 잠깐동안만 DS가 설정되어지는것이다. 플파라고 하더라.
그것을 비난하거나 그러려고 하는건 아닌데 실제 피해를 보는 쪽은 섭쪽이다.
뭐 굳이 여기서 자세한 얘기들을 풀어내는건 의미 없어보여서.... 피해를 받은 섭들은 알것이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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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정 하고 싶은 SM과 DS는 무엇인가? 어떤 관계 설정을 통해서
어떤 플레이를 하고 어떤 관리를 하고 어떻게 조교를 할것인지?
언제나 항상 그 방향을 설정하고 실행하는건 나의 몫이다.

내가 소유하게될 섭과 대화를 통해서 섭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장점은 부각을 시키고 단점은 보완을 통해서 나의 소유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내가 원하는 내가 하고자 하는 DS이며 그 DS를 통해서 내 SM을 완성해 가는것이다.

나는 다이어트를 시켜주는 헬스트레이너가 아니다.
아침에 지각을 하지 않도록 깨워주는 알람시계도 아니다.

나는 그저 섭에게 보상과 처벌의 기준을 세우고 내가 내린 지시에 대해서 또는 과제수행에 대해서 잘했으면 보상을 못했으면 처벌을 함으로서 자신의 역활에 충실하게 만들뿐이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에셈을 선택하는 이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자신의 의지박약을 원망해야 하지 않나?
자신의 의지박약으로 아침에 일어나는것을 못하고, 약속을 못지키고.... 그건 자신이 해야할것이지 누가 대신해 줄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3년 12월 1일 일요일

성적학대와 자아상실에 대한 견해...



성적학대와 자아상실에 대한 견해...


이 견해는 제 개인적인 것이며, 개인적인 견해에 대한 반론은 언제나 보장합니다.

성적학대에 대한 전제 조건은 본인의 동의여부가 될것이다.
일반적인 성적학대는 일방적인 학대로 인한 자아가 상실되고, 그에 따른 피해가 발생하지만,
SM에서의 성적인 학대는 스스로 동의했으며, 그 동의를 바탕으로 한 학대가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동의절차를 거친 성적학대는 자아상실이 아닌 자아실현으로 봐도 무방한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성적학대에 대한 동의를 하기 때문인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이것을 어떤시선에게 바라보아야 하며, 또한 어떻게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것일까?
정답은 바로 합의에 의한 관계이며, 그 관계가 지속될때 자신의 자아가 실현된다고 볼수 있다.

그럼 성적학대만이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성적학대는 육체적, 정신적인 부분 모두를 포함하며, 또한 자신의 일상안에서도
그 학대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동의된 학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스스로 학대를 통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며, 또한 학대를 통해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인지하게 된다.
자연히 학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며, 점점 더 학대에 대한 내성으로 인한 강도가 높아지게 되는것이다.

사실 학대라고 표현하지만, 이것은 고통에 입각한것이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그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피학대자에게는 그 어떤 성감 보다 더 높은 성감을 제공하고,
또한 자신스스로 만족을 하게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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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학대만이 전부라고 할수 없다.
그 학대안에는 채찍과 당근.. 즉 체벌과 포상의 의미도 포함이 된다.
무조건 학대가 아니기에 어떤 지시에 대한 결과물을 놓고 그에 대한 체벌과 포상을 내포하고 있다.
즉, 조건이 필요하며, 그 조건에 부합되었을때 또는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을때의 조건성립이 되어야 하는것이다.

보통의 서브들의 자아는 스스로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자신의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하지 않을때가 많다.
자아란 스스로 만들어지는 인격이지만, SM의 자아 즉 서브들의 자아는 스스로 만들어지기 보단 타인에 의해서
자아가 정립된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보통 서브형의 자아를 가진 사람들의 대표적인 경우는 성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보통은 타인에게 의지한다는것이다.
타인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자신 스스로 어떤 일에 대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타인에게 그 판단과 결정을 위임하게 되며, 그로 인해서 자신의 선택권을 내어주게 되는것이다. 그게 가장 일반적인 경우의 서브의 형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타인에게 내어준 선택권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다.
순순히 받아들이는 행위 또한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통해서 당연시 하기 때문인것이다.

서브의 자아 형성에 돔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놓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브형의 자아를 갖고 있는 일반사람들 또한 사실 복종형인간에 가깝지만, 스스로 인지했을때와 인지하지 못했을때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것이다.

보통의 서브라고 하는 위치의 사람들의 특징을 들어보자면,
1. 타인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2. 타인의 명령에 복종하며, 스스로 보단 타인의 명령에 움직이는 수동형에 가깝다.
3. 性적인 부분에서의 모습은 완전한 수동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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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들의 자아형성에 돔이 많은 영향을 가지게 되는것은 당연한것이지만, 서브던 돔이던 보편적 성적가치관의 틀안에서 움직이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가까지 올바르고 어디까지가 올바르지 않다고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서로의 합의에 의한 기준점을 어디에 두고 있냐에 따라서 기준이 달라질수 있으며, 여기서 합의라고 표현했지만, 대부분은 돔의 의사에 대한 서브의 동의라고 밖에 설명할수 없을것 같다.
합의라는 것은 서로 어떤 전체적인 행위에 대한 의견조정이 합의지만, 대부분 SM에서는 합의보단 동의라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한다. 왜냐하면 의견조정보단 돔에 대한 믿음을 베이스로 한 서브의 일방적 동의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브는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행위들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지만 돔을 믿는 믿음을 베이스로 그 행위를 할수 있다는것이며, 그것은 표현하지 않는 암묵적 동의로 해석할수 있는것이다. 물론 그 동의를 한 서브에 대한 책임여부를 물을수 없다.
모든 행위에 대한 책임여부는 돔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SM에서 돔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것중 하나이며, 책임은 모두 돔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 책임을 회피하는 돔이 있다면, 그 책임을 서브에게 전가하게 된다면, 서브는 피폐해지는것이기 때문이다.
암묵적 동의를 했다 해도 돔은 그것에 대한 책임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이것을 회피한다면 돔이 아닐 가능성이 1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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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상실에 대한 견해.


사실 SM에서 자아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위에서 얘기했지만, SM에서의 서브의  자아는 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아상실은 무엇일까? 돔에 의해서 자아가 만들어졌으니 상실도 돔에 의해서 상실된다고 해야 하나?
맞다. 자아를 형성하게 했던 돔에 의해서 서브의 자아가 상실될수도 있다.
물론 같은 돔에 의해서 자아가 상실될수도 아닐수도 있지만, 그것을 논하기 보단 돔에 의해서 자아가 상실될수 있다는 사실에 주못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돔이 같은 지식에 같은 경험에 같은 방법의 조교를 실시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A라는 돔과 B라는 돔은 지식, 경험, 조교 전부 다르다. 그 둘이 같은부분은 없다고 본다.
그럼 A라는 돔을 만난 C 서브가 SM에서의 자아가 형성되어 서브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했다고 치자
그러다 A라는 돔에게 버려진 C서브가 다시 B라는 돔을 만났을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바로 자아상실이 나타난다. 자아가 연장되어지는것이 아닌 바로 상실이 나타난다는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C서브가 해왔던것들이 일시에 전부 깨져버리기 때문이며, 그 연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B라는 돔이 C라는 서브에게 자아를 형성하게 해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수 있을것이다.
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아형성에 앞서서 케어가 먼저되어야 한다는것이다.
그렇다면, C라는 서브의 자아를 상실시키지 않을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물론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각자의 돔에게 맡겨두기로 한다. 그것은 표준화된 방법은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방법에 따라서 적용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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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에서의 서브의 자아는 무엇일까? 물음을 던지는 이들이 많을것으로 생각된다.
서브라는 위치의 사람들의 자아가 과연 무엇일까? 정말 궁금하지 않나?
바로 서브라는 위치의 사람들의 자아는 복종이다. 복종하는 법을 배우고 복종 결과에 대한 처우를 받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것이다.
또한 그 복종의 결과에 따라서 자신의 어떤 처분을 받게 되는지도 깨닫게 되는것이다.
그것이 성적인부분에 한정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한국에세머들의 대표적인 형태는 모두 성적인 부분에 국한되어 있으며, 성적인 부분만 부각시킬뿐이다.
사실 복종이라는 것은 심리적인형태를 외형적으로 표현해내는것인데, 외형적인 부분만을 따로 부각시키는것이다.

우리가 얘기할때 절대적복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 절대적 복종은 존재하지 않을수밖에 없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모든 인간의 욕구에 대한 만족도는 100%를 이룰수 없기 때문이며.
그 만족에 따른 복종의 깊이도 정해지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즉 외형적인 복종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것도 이를 반증하는 것이도 하다.
예를 들어 내 서브에게 명령을 내리고 서브가 그 명령을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명령수행이 미흡하다 치면 그에 대한 처벌이 주어지며, 명령수행이 만족하다면 포상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 행위안에서 처벌 위주로 진행된다면? 또는 포상 위주로 진행된다면?
당연히... 복종의 깊이는 점점 얕아지고 그리고 만족도 또한 감쇄되고, 당연히 복종의 와해되는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아에 대한 회의가 들게 될테고.. 그 관계는 정리될것이다.
마지막은 서브가 가졌던 자아가.... 상실되는 결과가 만들어지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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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생각나는 대로 주절 주절 써서.... 보는 분들이 알아서 해석해야 할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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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9일 금요일

SM을 하면서 웬 이성적???

SM을 하면서 웬 이성적???


가끔 보면 SM을 하고 있는 에세머이면서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우리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것은 본인 위주의 이성적인 판단이지 보편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라는것이다.

만약 보편적인 성적 가치관에 입각해서 SM을 바라본다면 SM은 그저 변태로 일갈하고 마는 하나의 행위이며, 정신병의 일종일뿐이다.
그러나 SM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보편적인 성적가치관에서의 변태와 정신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굳이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인정했으며, 받아들이고 스스로 에세머라 칭하며 SM에 대해서 더 열심히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SM에 진입하기전의 이성적 접근과 판단은 필요하다.
진입전이라면 과연 내가 새디즘이 마조히즘이 맞나? 그리고 내가 받아들이고자 하는것에 대한 자기 스스로 주관적인 가치관에 의한 접근과 판단을 하는것이고, 그 주관적인 가치관에 의한 접근과 판단의 모체는 보편적 성적가치관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저런 접근과 판단을 하지 않고 오로지 본능에 입각해서 진입을 한다해도 마찬가지로 에세머도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생각과 많은 경험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할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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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있는 SM... 행위들, 파트너를 구인하는 활동, 파트너와 하는 모든 행위, 생각들, 환상들...
이것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적이 없다.
내 스스로 이것은 나와 나에게 소유된 암캐가 동의해서 이루어진것이며, 서로의 성적만족을 위한 모든 행위라는 것이다.
여기에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성적가치관을 대입해서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에세머에겐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며,
나에게도 무의미한 일이 되는것이다. 즉 에셈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경험이 쌓이면 점점 더 강한 고통을 더 강한 수치심을 주거나 받고자 한다.
왜? 이미 성적만족감이라는 것은 어떤 하나의 행위에 만족을 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펠라치오 봉사를 시켰다. 그리고 2-3개월후 딥뜨롯을 시킨다....
펠라치오는 입으로 페니스를 봉사하는것이지만, 딥뜨롯은 입 자체를 보지화 하는것이며, 그로인해서 서브는 고통을 갖게 된다.
아주 단적인 예지만, 이렇듯 경험이 쌓이면 점 점 점 더 강한 고통과 수치심을 갖고자 하는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지난후 그들과 대화를 해보면 더 강한 더 수치심이 큰 행위들을 하고 있다.

나는 에세머던 레즈비언이던, 젠더던 일반인이던 그들의 모든 성적인 경험과 상상력을 모두 용인한다.
이것은 내 에세머로서의 생활과 그리고 지나온시간동안의 많은 사람들의 만남, 또한 나의 성적상상력에 기인한것이며,
모두 용인할수 있는건, 바로 내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믿음이며, 그런 믿음들이 모든것을 용인하게 만드는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용인하는 모든것들을 내가 실제 하고 있다고 할수는 없지만, 용인했다는 것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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