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8일 금요일

잊혀어져가는것과 잊혀진것들의 차이?

잊혀진것과 잊혀져가는것의 차이는 뭐지?

과거형과 현재진행형이겠지?

그런데 왜 새디즘은 왜 나의 새디즘은 잊혀진것과 잊혀져가는것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내 안에 남아서 내 안에 또 다른 나로 존재하는거야.

이제 좀 잊혀져가는것의 범주에 들어가줄래?

같은 대화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싶어도 대화를 해보면 너무 얕은 수준의 대화에 내가 스스로 그 대화를 종결짓고자 한다.

심오하진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 아주 최소한의 지식은 갖고 있어야 하는거 아니야?

그저 본능이라는것만 부각시켜서 그저 본능적인 사고만이 유일하다고 강변할래?

그건 아니야....

디엣도 그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어야 신념이 있어야 하는거야. 그저 정해진 규칙? 그건 사실 누가 만들었을까? 정해진 룰 따위는 없어. 다만 자신의 룰이 있는거지.

내 새디즘 이제 잊혀져가는것의 범주에 넣고 싶다 진짜....


2018년 10월 23일 화요일

단상.

SM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항상 계속 쭉 해왔던것이다.

그러나 SM이라는 性성향(?) 아니면 개인의 性추구(?) LGBT처럼 성적소수자(?) 다양한 생각들이 들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나의 가진 새디즘은 나의 개인적 성적성향이자 취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새디즘은 정신적/육체적인 행위를 상대방에게 가하여 그 상대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며 또는 느끼며 성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그로 인해 성적 흥분도 갖게 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며 사실 이는 우리 사회가 말하는 보편적성가치관이나 성윤리에 위배되는것은 당연하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적 성격으로 볼수도 없는것이 나는 나의 새디즘을 받아낼수 있는 메저키즘을 가진 파트너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얻게 되는것이지 그것을 일반적인 성적가치관을 가진 상대에게 하지는 않는다는것이다.

SM에는 롤플레잉이라는 플레이가 있다. 사실 성향과 포지션은 분리되어 있다.
보통 에셈을 하는 사람들에게 성향이 어떻게 되세요? 라고 물으면 전 멜돔이예요 전 팸섭이예요 라고 하는데... 내가 가진 상식에선 그건 틀린답이다.

즉 성향을 물어볼땐 새디스트인지 메저키스트인지를 답하면 되고...
포지션이 어떻게 되세요 할땐.... 돔인지 섭인지, 마스터인지, 슬레이브인지를 답하면 된다.

그리고 또하나 돔이던 섭이던... 커던 키던... 다들 자기에겐 새디즘도 메조키즘이 없다고 답하는데.. 그것도 틀렸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아.

보통의 사람들에겐 새디즘과 메저키즘 둘다 갖고 있으며 두개의 성향의 발현 차이에 의해서 새디즘이 강할수도 메저키즘이 강할수도 있는것이다. 둘다 없다고 답하는 사람은 정확하게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것인데 얘기하다 보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다고 단언해버린다.

스팽키는 대부분 메저키즘을 갖고 있기에 스팽을 받기를 원한다.
스팽커는 대부분 새디즘을 갖고 있어서 상대에게 스팽을 하기를 원한다.

-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범주에서 살짝 벗어난 얘기를 하자면,
DS라는 복잡미묘한 관계설정이 싫어서 플레이위주의 만남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것이다. 그 순간만 잠깐동안만 DS가 설정되어지는것이다. 플파라고 하더라.
그것을 비난하거나 그러려고 하는건 아닌데 실제 피해를 보는 쪽은 섭쪽이다.
뭐 굳이 여기서 자세한 얘기들을 풀어내는건 의미 없어보여서.... 피해를 받은 섭들은 알것이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

내가 진정 하고 싶은 SM과 DS는 무엇인가? 어떤 관계 설정을 통해서
어떤 플레이를 하고 어떤 관리를 하고 어떻게 조교를 할것인지?
언제나 항상 그 방향을 설정하고 실행하는건 나의 몫이다.

내가 소유하게될 섭과 대화를 통해서 섭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장점은 부각을 시키고 단점은 보완을 통해서 나의 소유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내가 원하는 내가 하고자 하는 DS이며 그 DS를 통해서 내 SM을 완성해 가는것이다.

나는 다이어트를 시켜주는 헬스트레이너가 아니다.
아침에 지각을 하지 않도록 깨워주는 알람시계도 아니다.

나는 그저 섭에게 보상과 처벌의 기준을 세우고 내가 내린 지시에 대해서 또는 과제수행에 대해서 잘했으면 보상을 못했으면 처벌을 함으로서 자신의 역활에 충실하게 만들뿐이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에셈을 선택하는 이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자신의 의지박약을 원망해야 하지 않나?
자신의 의지박약으로 아침에 일어나는것을 못하고, 약속을 못지키고.... 그건 자신이 해야할것이지 누가 대신해 줄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8년 2월 11일 일요일

상상과 환상의 차이...

상상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보는것

환상은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 이라고 사전적 의미로 정의되어 있다.

상상과 환상의 차이는 뭘까?

상상은 현실로 만들어 낼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것을 말할것이고,

환상은 말 그대로 현실에 나타날수 없는 나타내어질수 없는 것을 말할것이다.

그러나 에셈에서의 상상과 환상은 어떨까? 과연 사전적의미 그 자체로 해석해서 대입해야 할까? 아니면? 가능할까?

그 답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있다.

상상이던 환상이던 그것은 오롯이 본인에게 주어진 세계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현실로 끌고 나오느냐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내가 안전하게 할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보아야할것이다.

실예로 가끔 보면 강간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친구들을 보게 되는데 과연 이 강간환상이 실제로 구현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은 그저 환상일뿐 실제로는 구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우리는 분명히 합법적 즉 범죄적요소가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아주 단호하게 배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이성적 사고를 통한 플레이의 개발은 오히려 나와 파트너에게 그리고 많은 에세머에게 돌이킬수 없는 상처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환상이라고 적시되어 있는것들 중에서 실상 현실로 이끌고 나올수 있는 것들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실 비이성적사고에서 출발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가치관에 위배가 되기 때문이다.

굳이 나의 즐거운 성생활에 비이성적사고와 보편적가치관의 밖에서 놀 필요는 없다.
충분히 이성적사고와 보편적가치관의 틀안에서도 즐거운 에셈생활을 할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과 만남을 통해서 그들이 가진 상상과 환상에 대해서 알게 되지만 실상 그들이나 나나 그것들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알기 때문에 오랜기다림과 오랜시간 노력을 기꺼이 아끼지 않고 또한 파트너를 위한 시간도 충분히 고려한다. 그것이 바로 디엣의 장점아닌 장점인것이다.

나의 상상속에 나의 파트너를 대입하고 현실에서 충분히 구현가능한것들을 구현하면서 즐거운 성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에셈인것이다.